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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추모 공원 라지 가트(Raj Ghat)

by 오향란 2016.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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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 가트(Raj Ghat)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를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공원이다.

 

 

'라지 가트' 막 입장해서 낮잠 즐기고 있는 dog과 함께 찍으려고 조심히 다가가 포즈를 잡았다.

 

 

 

↓ 간디 추모석이 있는 내부를 가려면 꽃길로 이어진 터널로 들어가야 한다. 

터널 안 끝부분에 신발 보관해주는 곳이 있으며, 이곳에 신발을 맡기면 입장이 이루어진다. (덧버선 착용 가능)

 

 

↓ 간디를 향한 추모글이 듯 싶다. 입장하는 곳 일면에 새겨진 글귀이다.

 

 

▼ 마하트마 간디 추모석

간디는 흰두교 개종파인 시크교도 청년에 의해 1948년 1월 30일 암살을 당했다.

힌두교 의식에 따라 그의 시신은 숨을 거둔 다음 날 이곳에서 화장식 치렀다.

재가 된 유골은 나뉘어져 인도 각지역의 강에 뿌려졌다.

 

 

 

간디가 숨을 거두면서 남긴 "Hai Ram (오 라마신이시여)" 라는 글쉬가 네모난 추모석 정면에 새겨져 있다.

 

 

 

추모대 앞 양 옆에는 모금함이 있으며, 여기에 모인 돈은

간디가 평생에 걸쳐 해방을 호소한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급으로 차별 받는 '하리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카스트'는 인도인의 계급차별제도를 말한다. 이러한 신분제도는 기원전 1300년 전후 베타시대가 전개되며 성립되어 많은 금기를 지닌 사회규법으로 굳어졌고, 인도인들은 누구나 이 카스트 중의 어느 하나에 자동적으로 귀속되었다. 따라서 각 카스트는 직업을 세습했으며, 카스트 상호 간의 통흔은 금지되었다.

1947년 독립 후 인도 정부는 차별적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공공 부분에서 하층 카스트 고용활당제를 명문화 하였다. 또 근대화와 교육, 경제성장 등의 요인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카스트제도는 점차 봉괴되고, 천민 노예 계층이던 수드라가 오늘날 평민에 해당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인의 생활 저변에 영양을 미치고 있다.

 

 

 

 

▼ 마하트마 간디를 위한 추모길

추모길은 사각형 담장 형태로 조성되어 잔디 광장 중앙의 간디 화장 장소(추모석)를 어디에서나 보이도록 조성했다.

 

 

간디가 이곳에서 화장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라지 가트'를 찾는 인도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미루어 보며

간디를 향한 인도인들의 존경심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꽃길로 만들어진 간디 추모길에서  

 

 

 

 

추모공원 건너편에는 간디 기념박물관이 있으며, 두 곳에서는

간디 사망일인 1월 30일과 탄생일인 10월 2일에 맞춰  대규모 예식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여행일 2016.03.02.

 

 

인도의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남아프리카로 건너간 간디는 그곳에서 인도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충격을 받아 반대운동을 벌이다 인도에 귀국해 독립운동을 개시했다. 사회적 정치적 관념을 구체화하여 제국주의자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객관적으로는 인도 민족자본의 입장에 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농민쟁의, 노동쟁의를 지도하고 인도 민족을 대중투쟁으로 결집시켜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후에 대중적 비복종운동을 개인적 불복종운동으로 바꾸어 국민회의파의 지도력을 상실했지만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인도 화폐 대부분이 간디 초상을 담은 것으로 보아 간디에 대한 인도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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