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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충북 음성 감곡성당 (감곡매괴순례지성당)

by 오향란 201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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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감곡성당(감곡매괴순례지성당)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으신 후, 첫 본당으로 1894년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초대 사목으로 부임하였다. 임 가밀로 신부는 북쪽 끝 산지부락 사목지 본당 이전을 염두에 두던 있던 중, 사목 방문차 장호원에 들렀을 때 산 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제게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이다" 라고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1895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하게 되었고, 매괴성월인 10월 7일 감곡본당을 설립하게 되었다. 임 가밀로 신부는 처음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매괴 성모님께 봉헌함으로서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에 이르게 한 것이다.

 

 

 

1930년 건축된 고딕식 감곡성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프랑스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시킨 성모상을 향해 일곱발의 총을 쏘았으나 성모상은 구멍만 나고 건재했다.

7발의 총알은 성모님께서 당하셨던 성모 통고(성모 칠고)를 생각하게 한다.

 

 

 

 

 

임 가밀로 신부는 일본 식민지 하에서 억압받는 청년과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의 뿌리를 잃지 않게 하였다.

 

 

 

 

임 가밀로 신부님 동상

임 가밀로 신부님은 프랑스인으로서 평소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음성 감곡본당에서 51년 동안의 사목 생활을 하신 임 가밀로 신부님께서는

1947년 10월 25일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

 

 

 

임 가밀로 신부님에 의해 1896년 건립된 최초의 감곡본당은, 충청북도 최초의 성당이자 우리나라18번째 성당이다.

 

 

 

 

 

 

매괴박물관

1934년 사제관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으로서 기도실과 성물판매소가 함께 한다.

 

 

↓ 임 가밀로 신부님 흉상

 

 

↓ 매괴박물관 내 소장품을 몇 컷 담았다.

 

 

 

 

 

 

 

 

 

 

1955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성모광장으로 봉헌된 터에 관한 이야기

 

1943년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자

임 가밀로 신부님이 무염시대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거두어 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후 기이하게 공사는 여러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진척을 하지 못하였고, 2년 후 해방이 되어 일본이 물러갔다고 한다.

 

↓ 십자가의 길

 

 

여행일 2014.08.02.

 

거룩하신 매괴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거룩하신 매괴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거룩하신 매괴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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