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대전

아산 공세리성당 그곳엔 역사와 아름다움이 있다

by 오향란 2015. 5. 23.
반응형

 

1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아산 공세리성당(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절묘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공세리 성당은, 1890년에 설립된 예산 간양골 본당에서 분활되어 나온 본당으로

1894년에 프랑스 출신 드비즈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해 동네 한가운데 민가를 얻어 교회당을 설립하

1897년에 공세곶창 부지를 매입하여 구 사제관(현 박물관)을 짓고 1922년 10월 8일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공세리 본당에서 공주, 안성, 온양, 둔포 본당이 분활되어 나갔다.

 

 

아산 공세리성당 진입로

 

 

 

오랜 수령의 느티나무로 이어지는 성당의 진입로, 이보다 차분한 마음의 안식을 주는 길이 있을까 싶다...

 

 

 

↓ 성당 입구 언덕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250년에서 300년 사이로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노쇠해서 현재 치료 중에 있다.

 

 

 

성가정 성모상이 가정의 달의 의의를 더하는 것 같다. 성모상은 어디에서도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공세리성당!!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1922년 건축 당시에도 성당 건물은 아산 지역의 명물로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역사와 신앙 그리고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루는 공세리성당!! 이런 아름다움을 두고 고색창연하다라고 하는 것 같다.

 

 

 

 

 

 

 

성당 주위에는 눈에 띄는 아름드리 고목 여러 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300년에서 500년 사이라고 한다.

 

 

 

내 어린 시절 종기의 농을 기가 막히게 빨아내던 그 전설적인 '이명래고약'이 바로 이곳에서 드비즈 신부에 의해 처음 제조되었다고 한다.

이명래고약은 드비즈 신부의 한국명을 딴 '성일론고약'으로 첫 출시되어 공세리성당 건축기금으로 쓰여졌으며

공세리성당 총회장이던 이명래(요한)에게 전수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성당 내부제단

한국전쟁 당시 공세리성당에 침입한 인민군들에 의해 많은 성물들이 파괴, 소실되었다고 한다.

 

 

 

공세리성당 박물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초대 천주교회 교우촌의 생활상과 유서 깊은 성물 그리고 박해시기와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들의 유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2008년 9월, 구 사제관을 개보수하고 박물관 개관 때 드비즈 신부의 손자뻘 부부가 자리를 함께 하고 드비즈 신부의 유물 13점을 기증했다.

박물관은 성당과 함께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 박물관 옆으로 있는 베네딕토관에는 지하 수장고와 성물방 등이 있다.

 

 

 

↓ 병인박해 순교자 이십팔인과 그를 전후한 네 분을 포함한 삼십이위 순교자 현양

공세리성당 동산에는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 삼형제의 순교자 묘역이 있다. 이분들은 1867년에 순교했으며

공세리성당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맹고개에 묘가 있었는데, 1988년 9월 20일 공세리성당 구내로 모셨다.

병인박해 때 삼형제가 함께 잡혀 수원으로 올라가며 박원서가 말하기를 "내 평생 천주 공경을 실답게 하지 않았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 "동생 들어 보소, 우리 삼형제 올라가 위주 치명하자" 했다고 한다.

 

 

 

↓,피정의 집

 

 

 

↓ 성당 아래쪽에 있는 동굴 모양의 성체조배실

 

 

 

 

 

 

성당 둘레 오솔길을 따라 세워진 십자가의 길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의 담은 14처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과연 우리 주 예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가짐을 기울였는 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산홍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는 데...

여름날에는 가녀린 상사화가 화사한 웃음으로 맑고 고움을 알려줄 것만 같고

가을날에는 단풍의 물결이 떨어지는 낙엽이 눈물 한 방울 찍어내게 할 것만 같고

겨울날에는 하얀 눈에 덮힌 백색의 고즈넉함이 청아한 마음을 만들 것만 같고

아무래도 공세리 성당 성지를 다시 찾지 않고서는 아니될 것만 같다.

 

여행일 2015.05.15.

 

 

 아산만과 접한 아산 공세리는 아주 오래전 중국과 주요 문물을 교류한 충남 서북지역의 내포지방 관문이었다. 또한 조선시대 들어서는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모았다가 서울의 경창으로 운반하는 공세관창(공진창)이 있었던 곳으로써 가장 활발할 때는 금산을 제외한 충남 전 지역과 평택, 옥천, 청주 등 40개 고을의 세곡이 모였다. 그러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곡물 대신 돈으로 세금을 받으려는 경향이 늘고, 곡 수집과 운반이 민간 상인에게 위탁되면서 공세관창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어 상실되었다.

 

 

 

285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