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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월악산 덕주사를 만나러 가다 - 덕주사(하덕주사) 상덕주사 마애여래입상

by 오향란 201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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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광버스, 월악산 덕주사를 향해 이곳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고 있다.  

 

 

 

덕주사 역사 따라 가기 기점.

 

 

↓ 덕주사 탐방로

 

 

두타산 무릉계곡도 그렇고, 우리 동네 일월저수지도 그렇고, 물이 풍성해야 할 곳들이 목말라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심정이다...

 

 

 

↓ 예로부터 학이 서식하였다 하여 학소대라 이름 붙혀진 절경의 바위는

월악산 깊은 골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학소대 위에 망월대와 어우려져 감돌아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덕주산성 덕주루

덕주산성에 하나의 성문 역활을 했던 곳이다.

 

 

 

 

덕주산성의 석축성벽

석축성벽의 둘레는 약 2km이며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각 시대에 걸쳐 중요한 역활을 했던 곳이다.

 

 

 

 

 

덕주사(德周寺) 대웅보전  

 

 

↓ 범종각

 

 

 

↓ 약사여래입상

 

 

↓ 산신각

 

 

↓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

 

 

 

 덕주사 연혁에는 덕주사의 역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589)에 창건 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월형산(月兄山) 월악사(月岳寺)로 불리었으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손국한 뒤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래고자 이곳에 들어와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높이 15m의 거암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산 이름을 월형산에서 월악산으로 절 이름을 월악사에서 덕주사로 절 있는 골짜기의 이름을 덕주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덕주사 자료에는 통일 신라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군사를 양병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하늘재)에 이르러 마의태자의 꿈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西天)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 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영봉을 골라 마에불을 조성하여 만백성에게 자비 베푸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마의태자 일행은 그곳을 찾아 석불 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에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다고 적고 있다.

 

 

 

본래의 덕주사(하덕주사)는 한국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소실 되었으며

현재의 덕주사(하덕주사)는 1970년 중건을 시작으로 옛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덕주사(하덕주사)를 둘러보고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로 올라가는 길이다.

 

 

바람도 무심하고, 바위로 이루어진 언덕길은 험준하고, 후덥지근한 발걸음이지만 나무잎 사이로 아! 가을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무슨 소원들이 그리 많은지...

 

 

↓ 상덕주사를 감싸고 있는 제1성곽이다.

 

 

 

나무들 사이로 상덕주사의 부속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힘을 내라는 불경 소리에 인증샷으로 화답을 하고~

 

 

 

▽ 상덕주사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

통일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오빠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와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하며 조성했다는 마애불(마애여래입상)

 

 

 

거대한 마애불 양옆으로는 작은 삼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 마애불 높이에 세워진 삼성각

 

 

↓ 삼성각 아래 바위 틈새에 있는 마애불감로수는 좁은 통로 안에 있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마실 수 있다.

 

 

 

상덕주사의 마애불을 감상하고 덕주사(하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마애불이 올려다 보이는 나무다리를 지나 바로 시작되는 험준한 바위길에 무릎이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찍은 거다~

 

여행일 20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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