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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프랑스)

by 오향란 200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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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사이유궁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있다.

베르사이유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등을 제외한 주요 부분은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 한다.

 

 

 베르사이유궁전은 1634년에 루이13세가 사냥을 위한 별궁으로 쓰던것을 루이14세가 1661년부터 20년간 증개축을 하면서 1682년 공식적인 왕궁이 되었다. 1710년 왕실성당이 건립되었고 1715년 루이14세가 죽을 때까지 왕궁중축이 계속되어 현재의 궁전의 모습을 갖게 됐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16세와 왕실이 파리로 옮겨 갈 때까지 왕실 가족과 정부가 107년간 머물렀다.

 

 1870년 보물 전쟁때 프러시아 군사정부가 주둔했으며 1871년 1월에는 프러시아왕 빌헬름1세가 거울의 방에서 독일황제가 되는 대관식을 갖기도 했다. 이 굴욕적인 역사는 1919년 세계1차대전을 매듭짓는 강화조약(베르사이유조약)을 통해 설욕하게 된다. 또한 제2차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의 야영장이 되는 등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마지막 왕이 된 루이 필립왕에 의해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궁전내 수많은 방중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 

이곳에서는 주요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였다.

 

 

 

 

 

 

  

 

 

 

 

 

 

여행일 2007.11.07.

 

 프랑스 국왕 루이14세부터 시작된 방만한 생활은 루이15세에 극치를 달하며 루이16세때에는 멸망에 가까워오자 국민들의 원성에 못이겨 부인 마리 앙투와네뜨와 함께 처가(마리 앙투와네뜨 모친 오스트리아 마이아 테리지아 왕비)로 도망치다 잡히어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국민은 자신들의 손으로 국왕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뒤를 이어 마리 앙투와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다. 지금의 베르사이유궁전은 루이14세~루이16세에 이르기까지 머물던 방만하고 화려했던 슬픈 역사를 가진 왕궁을 전 세계인에게 개방하니 역사란 참 재미있다. 곧 멸망해 사라질것 같아도 몇백년이 흐른 후에는 낭비했던 돈을 전세계에서 거두어 들이니 말이다. 웃으운말로 이쯤에서 보면 후세를 위해선 루이왕가가 왕 노릇도 잘한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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