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쇄국정책(鎖國政策)을 살펴보자.
『 외국과 왕성한 교역통상을 전개하는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의 대원군 이하응은 위정척사사상에 의거하여 단호한 쇄국정책으로 외래 자본주의 나라들의 침략을 저지하려 하였다. 대원군은 중국이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봉기 또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북경 침공 등은 문호를 개방한 때문이라 믿었다. 때문에 조선왕조를 수호하는 방법은 국내 인민에 대한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대원군은 집권 첫 시기부터 청나라와의 사대적 외교관계 이외의 모든 대외관계를 차단하였다. 대원군은 당시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일본의 메이지정부(明治政府)를 서양 오랑캐와 같은 무리로 인정하고, 종래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전통적인 교린관계마저 거부해 버렸다.
대원군은 1866년(고종 3)에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당시 우리나라에 잠입한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으로 프랑스와 전쟁을 하였다. 잇따라 1871년에는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號)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의 침입에 맞서서 싸우지 않는 것은 화평하자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화평을 주장하는 자는 매국노다(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글을 새긴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우고, 단호한 쇄국정책을 천명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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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조선의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입법권, 사법권, 군통수권 등 모든 절대 권한을 장악한 전제군주국가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결국 그 배타적 정치로 인해 일본에 국권피탈을 당하게 되었고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것 아니겠는가, 본래 배타적 정치란 것이 나라의 부흥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거늘, 역사가 이를 증명하거늘, 어찌 일본만이 잘못이었다 할 수 있겠는가. 지난 날의 일본과의 역사가 아무리 분하고 싫어도 우리 조선조의 잘못도 있었다는 것을 아파해야 할 일이다. 국가의 본질은 자유민주 주의에 근간을 두어야 하고, 시대정신은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최고위 공직자가 단순 흑백 논리로 국민을 향해 이웃 나라를 배척하자 외치고 죽창을 들자 선동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그 비이상적인 우리끼리 사고로 글로벌 21세기를 살아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공수처, 연동형제, 남북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여, 공수처, 연동형제 라고 하는 것이 비민주 독재의 길이라는 것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남북평화 통일은 굴종 외교가 아닌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이 이순 중반에 서서 바라는 게 뭣이 그리 클까마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리석은 역사를 남겨주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우리의 선대들이 목숨 걸고 되찾은 대한민국이다. 우리의 어르신들이 쓰디쓴 고생을 감내하면서 어렵게 일궈낸 선진국 대열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의 국가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는 파기로 가고, 조마스런 정책들이 망국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잠 못 이루는 밤에 애끓는 마음을 적어본다.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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