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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

전북 진안 마이산, 마이탑사, 금당사

by 오향란 2008.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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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馬耳山) 마이탑사 가는 길목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다.

사찰의 지붕을 화려한 황금빛으로 물들여 왜관상 눈에 띄는 특징이 있으나 고찰의 느낌이 감소하고 다소 가벼운 감마저 들게 한다.

 

 

 마이산(馬耳山)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일컬어져 오다가 이태조가 등극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릴 때 산이 마치 금을 묶어 놓은 것 같은 영감이 느껴져 속금산(束金山)이라 명명하였다 하며 마이산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이 이 산에 올랐다가 하산하여 진안에 이르러 산을 쳐다보니 두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형상이 흡사 말의 귀와 같다고 하여 산 이름을 고쳐 마이산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마이산은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산,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래전에 마이산(馬耳山)에 남편과 같이 두번을 찾았었다. 한번은 마이산 남쪽에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 보았고 두번째는 7~8년전 겨울에 이 곳(마이산 북쪽 마이탑사)을 찾아 주차장까지 왔다가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서 집으로 되 돌아 온적이 있다.

 

 

 

 마이탑사(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

 

 

 

 

 이갑용 처사(李甲用 處士) 동상

이갑용 처사는 조선 후기에 전북 임실에 살던 사람으로 25세 때인 1885년(고종 25)에 입산했다고 한다. 그는 마이산의 은수사(銀水寺)에 머물면서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 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전국 명산의 돌을 날라다 이곳의 돌과 같이 원형 그대로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이치와 8진도법(八陣圖法)을 적용하여 차곡차곡 쌓아올려 여러 형태의 탑을 120여개나 쌓았다고 한다. 돌을 운반할 때는 호랑이가 함께 도왔다고도 하고 높은탑을 쌓을 적에는 축지법을 썼다고도 전해진다. 지금은 80여 개의 탑 만이 남아 약 100여 년의 세월을 말해 주고있다.

 

 

 

 

 삼불 미륵단

 

 

 

 

 

 마이산(馬耳山) 암(雌)마이봉 남사면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으로 돌산을 채석 한 것처럼 보인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내외부 온도차로 인해 생기는 풍화 현상이라고 한다.

 

 

 자갈과 시멘트를 버무려 발라 놓은 듯한 암마이봉의 낙석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일개의 나무뿌리에서 셀 수 없는 나무가지를 돋아내어 마치 부채살 그물망처럼 암마이봉 벽면을 감싸고 있다. 

 

 

 

 

 

 의사인 작은사위는 병원장인데 장인 장모님과 봄 나들이 가야한다며 오늘은 쉰다고 한다.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된다며 나들이 길을 나선다. 장모를 데리고 이박심일간의 봄 나들이를 하고 온지가 불과 열흘전인데 장인이 왔다고 일까지 미루고 봄 바람을 쐐어 주려는 작은사위의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전북 진안의 마이탑사로 향하는 주변의 경관은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아 기지개가 한창이다. 칙칙하던 나무가지는 연두색을 내밀기 시작하고 잔잔한 호수에 한가로이 떠 있는 물놀이 배는 봄 단장을 끝낸 것 같다. 황금색으로 치장한 금당사(金塘寺)란 사찰이 마이탑사 초입에 있고 한참을 더 올라가니 그 유명한 마이탑사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탑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참으로 신비하고 불가사의 한 일이다. 건들면 무너질 것만 같은 크고 작은 탑들이 100여 년이 넘는 세월속에서도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이 경이롭기 그지 없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공적인 풍광은 그다지 자연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도 든다.

 

 여행 일. 200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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