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 #아프라시압언덕 #하즈라트키즈르모스크 #비비하눔모스크 #시압바자르
▼아프라시압 언덕에 있는 하즈라트 키즈르 모스크 Hazrat Khizr Mosque
독특한 생김새가 예사 건물은 아닌 것 같고 자꾸만 끌리는 데 우리는 그냥 지나쳐 갔다ㅠ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우즈벡에서 입장료 없는 곳으로 유일하지 않나 싶은 데
바로 길 옆에 있는 곳을 왜 모르쇠로 지나치게 했을까
혹여 어떤 정치적 편향성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는 지...
여행 주최 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곳은 원래 소그드인의 땅 소그디아나 지역이었으나, 8세기 초(712년)에 소그디아나를 정복한 이슬람의 군대가 전설적인 이슬람 예언자 하즈라트 키즈르를 기념하기 위해 아프라시압의 남문에 모스크를 세웠다. 모스크는 1220년 몽골이 중앙아시아를 침략했을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1884년과 1899년에 재건축 공사를 거쳤고 1919년에는 건축의 거장인 압두코 빈 보키(Abduqodir bin Boqiy)가 입구와 동쪽 미나렛을 설치하고 포털을 돔으로 덮어 완성시켰다. |
아프라시압 언덕, 하즈라트 키즈르 모스크 앞에서 바로 보이는 비비하눔 모스크
하즈라트 키즈르 모스크 경내에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의 영모도 자리하고 있다.
아프로시압 지역과 비비하눔 지역을 잇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지나는 자동차 도로를 찍어봤다.
다리를 건너 비비하눔 모스크 영역으로 들어섰다.
한 줄기 그늘이 이다지 소중한 것이었는 지를...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비비하눔 모스크 Bibi Khanum Mosque
본래 비비하눔 모스크는 새로운 수도 사마라칸트에 복합단지로 설계되었었다. 건설 목적은 티무르의 인도 원정(1398~1399)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오스만과 맘루크와의 전쟁(1400~1404) 기간에는 아내인 비비하눔이 감독을 맡았다. 모스크는 1399년에 시작해 1404년에 십중팔구를 완료했으나, 1405년 티무르가 명나라 원정길에 사망한 후 3년째 되는 해 완성되었다. 건설된 모스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훼손되기 시작했으며 1897년의 지진으로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1974년부터 남아 있는 건축적 요소들을 찾아내어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한 이래 모스크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지만 원래의 모습은 거의 상실하지 않았나 싶다.
비비하눔에 대한 전설 티무르가 원정에 나간 사이에 모스크 건립에 동원된 페르시아(이란) 출신 건축가가 비비하눔을 연모해 계속해서 추근거렸다. 비비하눔은 모스크 건설을 일부러 늦추는 건축가를 달랠 요량으로 볼 키스를 허락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티무르가 사실을 알게 되고 건축가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비비하눔을 보자기에 싸 미나레트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게 했다는 대표적인 전설이 있는 반면에 또하나는 비비하눔에게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게 해 세상과 거리를 두도록 했다는 소수의 전설도 있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티무르의 여러 아내 중 그가 가장 사랑했던 비비하눔(별칭)을 따서 지어졌다. 당시 수도 사마라칸트에 모스크(비비하눔)를 지어서 바치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후자 전설이 신빙성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하다. |
※ 비비하눔의 본명은 '사라이 물크카눔'이다. 그녀는 차이타이 칸의 후손으로 칭기즈칸의 직계 혈족인 이른바 황금씨족이었다.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혈통에 의한 통치의 명분을 얻기 위해 결맹 동지였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지배자 아미르 후세인을 모살하고 그의 아내 비비하눔을 생포해 결혼하였다.
거대한 아치형 입구, 웬만한 거리에선 대문 전체를 정직하게 담기 어렵다.
중앙 광장에 있는 코란(Koran) 받침대
거대한 코란 받침대는 티무르가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을 침공했을 때 가져온 석재이다.
석재 위에 올라 앉은 대형 코란(이슬람교의 경전)은 가품이다. 진품 코란은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반출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와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구조물은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전해져 주위를 맴돌며 소원을 비는 이들로 성시를 이룬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쉬엄쉬엄 복구 중
중아아시아 최대, 최고라는 당시의 명성을 바르게 되찾을 수 있을는 지.
화려한 옥색돔이 구르 아미르 영묘의 돔과 흡사하다.
비비하눔 모스크 맞은편에 있는 아담한 비비하눔 영묘에는 티무르가 사랑한 비비하눔과 그녀의 어머니의 관 외에도 여자 관이 더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티무르의 비비하눔에 대한 사랑이 소문처럼 각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비겁한 처세술이었는지.
아무튼 날이 조금만 시원했으면 그곳에 날렵하게 가보았을 텐데ㅠ
따가운 햇살이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려 어서 빨리 그늘로 피신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비비하눔 모스크 바로 옆에 있는 시욥 바자르 Siyob bozori(우즈벡어)
통상 시압 바자르(Siab Bazaar)라고 불리는 이곳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바자르 이름은 근처를 흐르는 시욥 강에서 유래되었다.
시장을 대충 둘러봤는데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견과류, 수제 그릇, 의류, 기념품, 잡화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사마르칸트역!
우즈베키스탄이 자랑하는 고속열차 아프라시압 탑승 (타슈켄트까지 2시간 30분 소요)
여기서 아프라시압은 옛 사마르칸트의 중심지었던 아프라시압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럼에도 크로스백!
권태로워도 버리지 못하는 건, 만만한 존재이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았으면 해, 그만큼 너를 애정한다는 표시이니까^^
오후 7시 30분, 타슈켄트역 도착
물줄기를 높이 뿜어 올리는 저녁빛 분수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아들을 멀리 떠나 보내는 엄마의 모습인 듯한 사진 한 장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2024.06.11.
그날의 심사를 오늘에 적어 남긴다
「여전히 꽃으로 그 무엇이고 싶다
나는 새싹이었으며 꽃이었으며
또한 그 무엇이었다
그 청춘기 까마득하지만
여전히 내가 스스로
헤집고 가야만 하는 길
몸은 어쩔 수 업는 노체지만
나는 여전히 꽃으로 그 무엇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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