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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팔번궁신사,하치만궁신사,금궁신사,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

by 오향란 201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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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번궁신사(八燔宮神社)

 

신역을 나타내는 하늘 천(天) 모양의 도리이가 인상적이다.  

도리이는 새가 인간을 신과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활을 한다고 믿는 구조물로 '도리'는 새(鳥)를 뜻한다.

 

 

면암 최익현 선생이 대마도로 끌려와 처음 3개월간 이곳 팔번궁신사 광장에서 수용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쓰시마의 대표적인 신사 팔번궁신사로서 오른쪽 계단 끝에는 하치만궁신사, 왼쪽 계단 끝에는 금궁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하치만궁신사

신사 입구 양쪽에는개의 개 형상 석물이 마주보고 있는데, 오른쪽 입 벌리고 있는 개는 숫놈, 왼쪽 입 다문 개는 암놈이란다.

여기서 가이드 왈, 사람도 남자가 여자를 보면 좋아라고 입을 벌리는데 개가 별 수 있냐고... ㅋ

 

 

하치만궁신사는 삼한에 임나일 본부를 건설했다고 하는 가상의 인물인 신공황후를 모신 곳으로

일본 역사가들도 틀렸다고 하는 일본 역사왜곡의 단면이 묻어나는 곳이다.

 

 

 

손 씻고, 입 헹구고,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하치만궁신사 앞으로 난 금궁신사 입구  

 

 

금궁신사(今宮神社)

대마도주의 아내였던 소서행장의 딸 고니카 마리아와 그의 아들을 모신 두 개의 신사가 옆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금궁신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속이 뻥 뚫린 고목이 있는데...  

 

 

↓ 위를 올려다 보면 저 높이 푸른 하늘이 보인다.  

 

 

 

성벽을 연상시키는 이곳의 거택들은 옛 무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사무라이 거리로 불렸었다고 한다.  

 

 

허물어진 건물 잔해를 보존해 놓은 터도 있고.

 

 

 

돌담장 거리에 있는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

 

 

나카라이 토스이는 대대로 소[宗(종)]가를 섬기는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근무지인 부산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한국말을 잘 했으며, 1882년에 '춘향전'을 번역해 아사히 신문에 20회 연재하기도 했다.

 

 

 

유품방에는 '나카라이 토스이'와 제자이며 연인이었던 '히구치 이치요'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히구치 이치요는 2004년 발행된 5천엔 지폐에 새겨진 일본의 비운의 여류 소설가로,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히구치 이치요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서른두살의 나카라이 토스이를 찾은 스무살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스물다섯살 까지로

그 사실은 히구치 이치요가 사망한 후 일기에서 밝혀졌으며 많은 화잿거리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가난한 여류 소설가로서의 짧은 삶이었지만, 사후 얼마되지 않은 시기부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일본인들의 면면을 볼수 있는 꽃단장길  

 

여행일 2015.06.03.

 

대마도(쓰시마) 관광은 한국 85%, 일본 본토에서 14%, 기타 국가 1%로 수준으로 대마도의 경제는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3월 미야기현과 이와테현 등 일본 동북부 지역의 리히터 9.0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한국이 일본 관광을 전면 중단했었을 당시

대마도의 경제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으며 대마도 시장이 한국을 6개월 이상 끈질기게 쫓아다닌 끝에 보다 빨리 대마도 여행길이 재개되었고 한다.

부산에서는 제주도보다 가까운 대마도, 대마도의 이즈하라 거리는 이곳을 가도 저곳을 가도 온통 한국인 물색으로 일본인 보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해 씁쓸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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