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내륙사막 지대에 위치한 페트라(Petra)
페트라는 아라비아의 향료와 중국의 비단, 인도의 향신료를 거래하는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거쳐가는 중간 교역지로, 기원전 600년에 아라비아반도 유목민인 나바테아족이 건설한 도시이다. 나바테아인들은 이곳을 지나는 대상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는 등, 약 700여 년 간 부를 축적했다. 페트라는 로마와 적대관계에 있는 파르티아 왕국을 지지하다가, 서기 106년 로마 트아야누스 황제에 점령되어 속주가 되고 말았다. 로마시대 들어서 교역로를 다마스쿠스로 돌리면서 수자원 고갈과 함께 급속히 쇠퇴되어 멸망의 도시가 되었다. 이후, 서기 363년 갈리리 대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페허가 되었고, 페트라는 외부 세계에서 잊혀졌다. 그후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여행 중 최초 발견했으며 그의 여행기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58년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본래의 25%의 모습을 찾았다.
바위라는 뜻을 가진 페트라(Petra)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페트라 입장.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서 시크 협곡 가는 길.
시크협곡 가는 길에 있는 오벨리스크 무덤
무덤 상단 부분에 4개의 피라미드 모양이 세워져 있다.
시크 협곡의 시작점 (Bab As-Siq)
페트라 입장해서 구름 한점 없는 길을 약 300m 걸어온 지점이다.
이곳에서부터 알카즈네 신전까지는 약 1km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 로마병사의 옷차림으로 협곡을 지키는 듯...
페트라의 저수지(저수조)
시크협곡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산이
지각변동을 일으켜 분리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폭이 좁은 곳은 2m에 불과하다.
고대 나바테아족이 페트라를 도시로 삼은 것은
외세로부터 방어에 용이한 최상의 입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웅장함을 과시하는 절벽 표면은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부드럽게 변모되었다.
바위를 헤집고 자란 나무! 아 생명의 위대함을...
시크협곡의 넓은 길이 되겠다.
앞에서 보면 코끼리, 옆에서 보면 물고기의 모습을 닮은 듯한 바위.
바위에 부조된, 낙타 몰이꾼과 낙타(발)의 흔적.
절벽 아래 바위 아래 부분에는 골을 파서 만든 수로가 있는 데
모세의 샘이 있는 인근의 와디무사에서 끌어온 물길이다.
물길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도시를 방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좁은 협곡 사이로 알 카즈네가 그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신비를 드러낸 알 카즈네 (Al-Khazneh) 신전
알카즈네는 1세기 초, 하리타트 4세 시절에 만들어졌을 것을 추정되며
페트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나바테아의 왕 아레타스 3세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카즈네는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알카즈네 내부는 여러 개의 작은 방이 있으나
텅 비어 있는 모습으로, 공허함 만이 감돈다.
여행일 2018.04.28.
페트라가 신비스럽게 느껴진 것은
페트라의 동쪽을 사수했던
웅장한 시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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