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니노(Nino)의 보드베 수도원 / 조지아 시그나기
9세기에 교회로 최초 건축되었고, 17세기에 수도회로 리모델링 되었다.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에 합병(1801)된 후에도 이 수도원은 대주교 존 마카슈빌리 아래서 러시아의 왕 알렉사데르 1세의 후원을 받았다. 1837년 대주교 존 마카슈빌리가 죽으면서 파손, 복원, 폐지 등의 수난을 겪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2003년 리모델링을 통해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 단지로 조성되었다.
조지아 카헤티 주의 시그나기 마을에서 2km 거리에 자리한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은 조지아의 주요 성지 중 하나로 성녀 니노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여성으로 "깨달음을 주는 니노"라고 불렸으며, 때로는 성녀 누네, 성녀 닌니 라고도 불렸다.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에서 약 3km 거리에 위치한 이곳 중세도시는 인구 약 3천여 명 정도로 조지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에 속한다.
"웨딩 하우스"라고 불리는 시청사 건물
이곳에서는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결혼식과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다.
전사자의 벽
2차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투입되어 전사한 병사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솔로몬 도다쉬빌리(Solomon Dodashvili) 동상
솔로몬 도다쉬빌리는 이 지역 카헤티 출신의 19세기 독립 운동가로서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계몽주의 문학가였다.
백만송이 장미 노래를 탄생시킨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태어나고 활동한 도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는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공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 재산과 그림을 팔아 백만송이 장미를 사고,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 앞 광장을 온통 장미꽃밭으로 물들인다. 마르가리타는 니코 피로스마니의 사랑 표현에 감동하여 잠시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떠나가 버린다. 그후 니코 피로스마니는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죽는다. 이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러시아 로맨스로 다시 태어난다. 러시아의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노래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수봉이 불러 히트시킨 곡 "백만송이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죽어서 조지아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로 거듭난 "니코 피로스마니"
미련없이 시들어 버리는 꽃만큼이나 슬프고도 허무한 "니코 피로스마니"의 가슴앓이가 심금을 울린다.
▼ 시그나기 → 트빌리시
저물어가는 오후, 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했다 (약 2시간 소요)
▼ 트빌리시 레스토랑의 디너쇼
조지아 가이드가 신경을 좀 쓴 것 같다. 역사가 있는 듯한 레스토랑 여러 룸 가운데, 조지아 전통 공연이 펼쳐지는 룸으로 안내했다. 뭔가 대잡받는 느낌, 조지아 민속 공연을 즐기면서 조지아의 특산품 와인을 곁들인 조지아 민속 음식 만찬은 풍성했다.
여행일 2022.09.24.
성녀 니노(Nino)의 전설
니노(약338~340)는 카파도키아의 공주로 태어나 평생을 하느님의 종으로 살았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나라와 왕실이 황폐화가 되어 고국을 떠났고, 조지아에 와서는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
그녀는 이베리아(조지아 동부,남부)에서 인내와 애덕 그리고 기적들을 행함으로 존경받았다. 이 기적적인 소식은 조지아의 왕비에게도 전해졌고,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는 왕비는 니노에게 궁전으로 와달라고 애웠했다. 하지만 니노는 저는 노예일 뿐이고, 제 신분으로는 궁전에 들 수 없다고 했다. 왕비는 니노에게 직접 찾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녀는 기도로써 왕비를 치유해 주었다.
왕실은 니노에게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물었고, 그녀는 사람들의 개종을 바랬다. 왕비는 그녀의 뜻을 받아드리기를 왕에게 청했으나 마리안 왕은 정치적인 이유로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곳에서 니노의 하느님에게 살려주기를 간청하며 나라를 개종하겠다고 약속했다. 왕은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고, 니노의 개종 제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325년에 성스러운 임무가 시작되고, 마리안 왕은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교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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