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대전

구담봉, 옥순봉, 두향의 애절한 사랑이 녹아 흐르는 충주호 (장회나루)

by 오향란 2017. 6. 1.
728x90
반응형

 

 

충주호 유람선 (장회나루) 

 

유람선 코스 (1시간)

장회나루 선착장을 출발하여, 상류제비봉 ― 노들평지 ― 두향이묘 ― 강선대 ―

신선봉 ― 구담봉 ― 채운봉 ― 선학봉 ― 금수산 ― 옥순봉 ― 장회나루 선착장으로 되돌아옴.

 

 

 

 

 

두향의 애절한 사랑이 녹아 흐르는 충주호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고, 관기 두향은 18세였다. 두향은 나이는 어리지만 시문화 가야금에 능했고, 매화를 분에 심어서 기르는 재주가 있었다. 두향은 처신이 고고하고 깨끗한 퇴계선생의 고매한 인품에 매료되어 흠모하였다. 퇴계선생은 부인 허 씨와 사별한 후, 시문화에 능한 두향과의 교분이 깊어지고 사랑은 10개월 만에 끝이 났다. 갑자기 퇴계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선생이 풍기로 떠난 뒤 두향은 부화한 시정잡배와 어울리는 것은 존경하고 사량했던 어른에게 누가 된다며 지방관에게 간청한 끝에 관기를 벗어나 퇴계선생과의 추억이 있는 남한강가 강선대에 움막을 치고 평생을 살았다. 퇴계선생은 관직을 퇴임한 뒤, 안동에 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은거했다. 병환이 깊어지자 애지중지하던 매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였고, 세상을 떠날 때 "매화에 물을 주거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매화분은 이별할 때 두향이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로 건냈던 것으로서, 퇴계선생 또한 평생을 두향을 잊지 않은 채 가슴에 담고 살았던 것이다.

 

 퇴계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나흘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드디어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퇴계선생에 대한 고절한 절개를 지켰다. 퇴계선생을 향한 두향의 사랑은 목숨과도 같은 숭고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 후 살아서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서로를 가슴 속 깊이 품고 사모했던 것이다.

 

 

 

 

구담봉과 옥순봉 등의 내력을 친절하게 알려줬는 데

기억에 저장한 것은 슬프고도 지고지순한 두향의 전설 뿐이다. ㅎ

 

 

 

10개월의 사랑을 하고, 21년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애절한 사랑

두향의 무덤이 어디쯤에 있다고 방송으로 알려줬는 데, 내 눈은 찾지를 못했다.

 

 

 

여기가 어디다 저기가 어떻다를 모르면 어떠리, 보는 곳곳 모두가 마음이 확 트이는 풍광인 것을...

 

 

 

 

 

 

 

 

 

 

 

 

 

 

 

 

 

 

 

여행일 2017.05.20.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움처럼 슬픈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치유할 수 없는 슬품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밝게 그리고 많이 웃어야겠다.

 

 

 

 

28811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