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77호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1233~1270) 흙과 돌을 섞어서 바닷길을 따라 처음 성을 세웠다. 조선 광해군 때 성곽을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6)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고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 소속 돈대 및 포대가 만들어졌다. 이후 고종 3년(1866) 병인양요와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외국 함대들과 벌인 치열한 전투로 크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77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복원하였다.
▽ 안해루(按海樓) - 영조 21년(1747)에 성곽을 고쳐 쌓으면서 안해루라 하였다.
▽ 광성돈대(廣城墩臺)
광성보에 소속된 3개의 돈대 중 하나로 보급 창고 역활을 했으며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포 3문을 복원 설치되였다.
대포는 홍어포라 하며 사정거리 700m로서 화약의 폭팔하는 힘으로 포알이 날아가나 폭팔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소포는 사정거리 300m로서 포알의 능력은 대포와 같으나 대포는 조준이 안되는 반면에 소포는 조준이 되었다. 가장 작은 포는 불랑기라 하여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다.
▽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 (辛未洋擾殉國無名勇士碑)
고종 8년(1871)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 덕진진, 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치기에 이른다. 이에 격분한 미국 해병이 4월 23일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 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 쌍충비각(雙忠碑閣) 강화군 향토유적 제10호
신미양요로 순국한 장군 어재언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쌍충비각 안에는 2기의 순절비가 있다.
1기는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재순을 기리는 순절비이고, 1기는 무명 순국자를 기리는 광성파수순절비이다.
▽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미국 해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합장묘이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재순은 고향인 충북 음성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이 되었고, 51인의 전사자는 7기의 분묘에 합장해 기리고 있다.
▽ 손들목돈대(孫乭牧墩臺)
광성보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손돌목돈대는 뱃사공 순돌의 유래에서 따온 이름으로 때는 인조 5년(1627) 후금(뒷날의 청)이 쳐들어 왔을 때로 올라간다.
임금이 서둘러 강화도 피난길에 나섰을 때 뱃길이 험해 배는 뒤집힐 듯 임금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뱃사공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점점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갔다. 임금은 뱃사공이 나를 죽이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손돌을 죽이라 명령했다. 손돌은 죽기 전에 제가 띄운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러면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손돌은 죽었고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따라간 배는 강화도에 도착했다. 임금이 강화도에 발을 내딛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물길은 더욱 심해졌다. 임금은 내가 뱃사공 손돌을 의심하였구나 나의 잘못이다 하며 손돌의 시신을 잘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치러주어라 하였다.
손돌목돈대는 숙종 5년(1679) 축조되었으며 원래는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
▽ 손들목돈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저 건너 김포 덕포진(대곳면 신안리) 언덕 위에는 손돌목 전설의 주인공 손돌의 묘가 있다고 한다.
▽ 용두돈대(龍頭墩臺) -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용두돈대 앞을 흐르는 염하(강화와 김포의 경계를 이루는 수역)는 뱃사공 순돌의 목을 베게 만든 곳이라 하여 순돌목이라 부른다.
순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이면 큰바람이 부는데 이를 두고 순돌의 한숨, 순돌의 추위, 순돌의 바람이라 한다.
▽ 용두돈대 안에 세워진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跡地淨化紀念碑)
기념비에 새겨진 "江華戰跡地淨化紀念碑"라는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기념비 뒷면에는 이은상이 짓고 김충현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 광성보의 아픔을 되집어 보면서 통치권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가끔은 늘그막한 여자가 혼자 여행하는 것에 보내는 옹졸한 시선을 깨야 하고, 쩨쩨하게 보내는 눈총을 피해야 하지만
세상 더 없이 따뜻한 남편의 든든한 응원이 있기에 홀로의 여행이 결코 외롭거나 두렵지는 않다.
여행일 2013.10.03
또 한 번 떠나갈 가을이 애타게 보고 싶어져서 홀로이 찾아 나선 강화도 여행이었다. 그런데 문득 나홀로 하는 여행이 많다 보니 사람들로 하여금 부부간의 금실이 좋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홀로이 하는 것을 두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 남편이 바쁜 일이 많은 까닭에 같이 다니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일 뿐이지 여느 부부 못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입맞춤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종종 나누고, 남편은 같이 다니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하고, 아내는 혼자 다니는 것을 미안해 하고, 환갑을 앞 뒤로 하고 있는 부부가 이렇듯 정을 나누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 다시는 못 올 내 소중한 삶을 지키는 것이다. 사랑도 행복도 내 삶 안에 넣어야 내 것이 되고, 아름다운 세상도 내 시간 안에 넣어야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결단코 나만이 지킬 수 있는 내 삶, 다시는 오지 않을 내 시간을 위해 나는 힘닿는 데까지 세상과 눈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세상을 향해 스스로 다가간 시간들이, 기꺼이 관심을 기울인 눈맞춤의 이야기들이 유수 같은 세월에 희미해지고 어느 날 홀연히 잊혀진데도 내 가슴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기에 말이다. 숲을 헤치고 강을 건너고 바다를 가르고 창공을 날아다닌 추억들이 훗날 훗날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그날 내 가슴을 뜨겁게 해줄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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