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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유일무이 존재감 타슈켄트의 가톨릭 성당 (예수 성심 대성당)

by 오향란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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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 존재감 타슈켄트의 가톨릭 성당 (예수 성심 대성당)

 
고딕 양식의 건축물, 로마 가톨릭 소속의 예수 성심 대성당 Jesus Sacred Heart Cathedral

예수 성심 대성당 안내판 - 영어와 러시아어로 써있다

이슬람이 88%인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의 가톨릭 대성당은 상징적인 건축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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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5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 우즈베키스탄의 가톨릭 교구 목록

타슈케트 예수 성심 대성당 / 사마르칸트 성 세례자 요한 교회 / 페르가나 성 마리아 교회 / 부하라 성 사도 안드레 교회 / 우르겐지 성모 마리아 교회

 
성탕 첨탑에 달린 종이 의외로 작아 보인다.

 
가톨릭 대성당은 사디크 아지모프(Sadyk Azimov) 거리에 위치하며, 애초 폴란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의 노력과 지원으로 건립되었다 하여 '폴란드 교회'라고도 부른다.
 
아치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얼기설기 구조물은 어둠이 찾아들면 반짝반짝 찬미의 빛을 발하리라~

 

이슬람에 공존하는 타슈켄트 가톨릭 교회의 역사 (예수 성심 대성당)

1883년 투르키스탄에 신부에 의해 가톨릭 교회가 설립됐다. 1902년에 2대 신부로 신학교 교수가 부임해 고아, 노약자 구제에 헌신했다. 1912년 콘크리트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저스틴 보나벤투라 프라나이티스(Justin Bonaventura Pranaitis) 신부의 주도 하에 폴란드 건축가 루드비크 판차케비치(Ludwik Panchakevich)가 설계에 나섰으나 1917년 건축 도중에 사망했다.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공사는 계속되었지만 1920년대 들어 볼셰비키 혁명과 권력 충돌 등의 이유로 교회는 미완성에 그치고 1925년에 국유화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대에 교회 건물은 숙소와 창고로 사용되고 결국 버려졌다.
수십 년이 흘러 1976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교회 건물을 복원하기로 결정한 뒤 1981년에 가톨릭 교회는 우즈베키스탄의 건축 및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0년에 종교 단체로 재등록 되었고, 1991년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된 후 로마 가톨릭 교구로 정식 등록되었다. 건물의 완전한 복원은 1993년에 시작되어 바티칸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및 여러 단체들의 도움으로 2000년에 마무리 됐다.
'예수 성심 대성당'이라고 이름 붙혀진 이곳은 2000년 10월22일 마리안 올레스 대주교에 의해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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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벽면에는 성당의 중요 행사와 역사적 기록들을 전시해 놓았다.

 

주일에는 4개국어로 미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폴란드어)
타슈켄트에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고, 한국 교민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한국어 주일미사가 생겼단다. 반면에 폴란드인 신자 수는 줄어드는 양상이라고 한다.
 

 
예수상을 높이 떠받들고 있는 황금색 제대가 눈길을 끈다.

 
깔끔하게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스테인드 글라스 세로 창이 인상적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딴 도서관과 룸이 있다는데 몰라서 구경하지 못했고,
독특한 성당의 외부를 폭넓게 둘러봤으면 좋았을 텐데... 더워서(피곤해서) 패스하고 말았다 ㅜㅜ
 

여행일 2024.06.12.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로, 전체 인구의 88%(수니파 70%) 가량을 차지하며 러시아 정교회 9%, 기타 3%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자국민에게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포교하는 것은 법에 따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외국인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적발되면 징역, 강제 노동형, 벌금 등을 부과하거나 강제추방 조치를 동시에 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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