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대교
비바람 치는데도 고요롭고 심한 황사로 시야가 잿빛인데도 아름답기만한 소록도 앞바다...
아래 사진에 작게 보이는 건물이 소록도 화장터 건물이다.
국립소록도병원
구한말(1910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시립나요양원'이 시작이며, 1916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으며, 해방 후 1960년부터 수용 위주에서 치료 위주로 관리 정책을 전환하며 '소록도갱생원' '국립나병원' 등의 이름을 거쳐 현재에 이른다.
감금실(등록문화제 제67호)
일제강점기 시절 갖은 이유를 들어 징벌이 행해지던 곳으로 부당한 요양소 운영에 대한 한센인들의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슬픈 역사의 장소로 소록도의 어두웠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감금실 / 김 정 균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는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코 폭팔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껍질을 뜯어
목메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검시실(등록문화제 제66호)
1935년에 지어진 검시실은 두칸으로 나눠져 있다. 한칸은 사망한 환자들의 검시가 주로 행해지던 해부실이고, 다른 한칸은 정관절제를 행하던 단종대로 쓰였다.
해부대 : 피가 흐르도록 골을 내었으며 하부로 연결된 배관에 수도꼭지를 달았다.
단종수술실
일제강점기 시절 한센병 환자들의 씨를 말려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1927년 3월에 일본 생리학회에 의해 단종수술이 제기 되었으며, 1936년 일본인 병원장에 의해 감금실에 수용되었다가 출감하는 환자들에게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게 했던 장소다.
이 동(李 東)이란 25세의 젊은이가 단종수술을 받은 후 통곡으로 쓴 글이다. 단 종 대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례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님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거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다을 때
모래알처럼 반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희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소록도 천주교회
공석비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오스트리아인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는 1959년과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딘 후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는 등 한센인들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나이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부담을 줄 것 같기에..."
구라탑(求癩塔, 1963년 건립)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발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폐교된 녹산초등학교
소록도 자료관
소록도 중앙공원
광복 후 공원을 확장하며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명명되었지만, 애초엔 한센병 환자들의 피를 물들이고 조성된 공원이다.
여행일 (2009.12.25.)
달에게 해에게 하소연하며 울었을 그 하늘에서 빗방울을 뿌린다
밟히고 뭉그러져 지독히 아팠다고 매서운 바람이 전한다
지푸라기 잡고 몸부림치다 바람에 실려갔다고...
소록도에 담긴 애처로운 사연이 나를 쓸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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