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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참혹한 역사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by 오향란 201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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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으로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히틀러의 만행을 의식해서일까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데 마음은 칙칙해진다.   

 

 

▼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정문 위에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독일어 문구가 걸려 있다.

원인도 이유도 알 필요 없는 강제 수감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 문을 통해서 매일 강제노동에 끌러나가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했다고 한다.   

 

한 맺힌 영혼들이 쌀쌀한 바람을 빌어 당시의 아픔을 전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서니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댄다.

 

 

 

▼ 정치범들과 유대인들의 이송 경로를 나타낸 지도   

 

 

▼ 1940년 6월 정치범 수용소를 시작으로 유대인들을 집단 수용하고 1941년 살해시설을 학대해 1942년부터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입소에서부터 착취, 작업, 생활, 처벌과 죽음 등에 관한 사실을 입증하는 당시의 문서와 사진.  

 

 

 

   

 

 

 

 

▼ 열차로 실려온 유대인들 중 노약자나 어린이는 우선으로 목욕한다는 이유로 옷을 벗게한 후 공동샤워실을 위장한 지하 가스실로 보내졌다.

 

 

 

▼ 시신의 뼈를 담아 놓은 자루와 문서. 문서의 내용은 뼈를 잘 이용해 보자는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 카펫과 원단을 짜기 위해 모아 놓은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실제로 보면 양이 어마어마하다.   

 

▼ 머리카락으로 짠 카펫

어떻게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카펫을 짤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소름이 끼친다.   

 

▼ 아우슈비츠의 한 문을 보았을 뿐인데 일행의 모습들이 무겁기만 하다. 

 

 (다녀온 날 2011.02.09.)

  체코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에 속해있는 독일 명칭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 원명으로 오슈비엥침(Oświęcim)이라는 도시로 나치는 1940년 6월 오슈비엥침에 아우슈비츠(제1수용소)를 세우고 1941년 11월에 이곳에서 3Km 떨어진 비르케나우에 제2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세웠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제2수용소에서는 나치의 갖은 만행으로 약 150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패전국이 되자 독일 나치군은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개기 위해 유품을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 의회는 벽돌 건물 28동이 남아 있는 제1수용소를 영구보존키로 결의하고 현재 아우슈비츠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2수용소는 제1수용소보다 훨씬 넓은 약 53만평에 300동 이상의 수용소가 있었으나 45동의 벽돌 건물과 22동의 목조 건물만이 죽음을 증명하는 황량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 상태로 제2화장터와 제3화장터 사이에 희생자들을 위한 국제위령비를 세웠다. 또한 나치의 잔악행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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