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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들의 유품

by 오향란 201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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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군은 수용자들의 물품들을 종류별로 선별하여 독일로 보내거나 재활용품으로 썼다.

소련군에 밀려 퇴각할 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대다수의 물품들을 불태웠으나 그 와중에도 남아 있는 이 물품들은 유대인들의 유품으로 나치의 만행을 증거하고 있다.

 

▼ 유대인 희생자들의 구두  

그 시대 유대인들이 얼마큼 잘 살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범랑 냄비, 구두 등 지금의 것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세련미를 갖고 있다. 

 

 

 

▼ 범랑으로 된 냄비와 그릇

 

 

▼ 안경테  

 

 

▼ 의족과 의수

 

 

▼ 보관하였다가 나중에 돌려준다고 해서 이름을 써 넣은 가방들

 

 (다녀온 날 2011.02.09.)

 

독일 나치군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그 전비를 만들기 위하여 히틀러는 눈에 가시로 여기던 돈많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일도 생각해야 하고 동맹국인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눈치도 보아야 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유대인을 회유와 강제로 수용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유대인은 나치의 돈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처음엔 회유에 의해서 후엔 강제에 의해서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들의 재산과 귀중품은 모두 나치의 차지가 되었고, 살아서도 사는게 아니었으며 죽어서도 죽는게 아니었다. 살아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야 했으며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참혹하게 죽어서도 편안할 수가 없었다. 금니는 뽑아져서 독일의 금고를 메워야 했고 머리카락은 생필품에 재료로 시신의 기름은 비누의 원료로 뼈는 갈아져서 골분비료가 되어야 했다.

 

◎ 위의 설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은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여 잘못 설명되었더라도 보는 이는 블로그의 주인이 아는 선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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