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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죽은자들의 고급 주택 레꼴레따 묘지

by 오향란 201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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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리 레꼴레따

 

호화로운 묘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레꼴레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번째로 잘 나가는 곳이다.

 

 

 

 

▼ 아르헨티나 문화제 레꼴레따 묘지

 

1822년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교회 내에 무덤을 쓰는 것을 금지시키자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가 수도원 과수원에 묘지를 쓰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1880년부터 상류 지배 계층의 묘지로 변모되어 부와 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묘지 밖에는 REQUIESCANT IN PACE, 묘지에 들어서면 EXPECTAMUS DOMINUM 라고 쓰여져 있다.

값비싼 죽음으로 주님을 부르짖는 소리... 죽음 속에도 모순이 함께 하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 13명의 대통령과 노동자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퍼스트레이디 '에비타'

땅고의 황제 '까를로스 가르텔' 문화계의 저명인사 등 수 많은 유명인사들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에비타(에바 페론)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항상 무조건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고

아르헨티나를 빈국으로 모는데 일조를 해 성녀와 악녀로 나뉘어 평가되고 있다.

 

 

 

하나의 죽음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

묘지 하나에 몇 억을 호가한다는 소리는 뒷전으로 들린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리라고 하는 금싸라기 땅에 초호화 공동 묘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호화롭기 짝이 없는 레꼴레따 묘지 담장은 궁하게 보인다.

 

2014.12.10.

 

국민을 잘 못 사랑한 퍼스트레이디 에비타(본명: 에바 두아르테)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시골 마을 대지주인 아버지와 그의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고향에 온 땅고 가수를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왔다.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영화계에 발을 딛었으나 주어지는 것은 단역과 조연이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미모를 이용 문화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배우, 성우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지진 자선행사에서 당시 군부의 핵심 권력 인사 후안 페론을 만나면서 마침내 영부인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에바는 25세였고 페론(제29대 대통령)은 49세였다. 그녀는 영부인이 된 후 정치적 동반자로서 에바페론 재단을 만들고, 여성 투표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 시키고, 여성페론당을 창당했다. 이후 부를 재분배한다는 명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량 배급, 의료 혜택 등 엄청난 수준을 지원한 탓에 국가를 재정적 파탄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배우 출신인 에비타는 엘리트층에게 무지하고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뛰어난 용모와 화술로 두 번이나 타임지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옷차림(에비타 룩)은 유럽 사교계에 유행이 되었다. 자신의 타고난 미모를 출세에 이용한 에비타, 소외계층의 대모을 자청했던 에비타, 그녀는 죽어서도 성녀와 악녀로 나뉘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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