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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by 오향란 2019.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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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채꽃밭이 끝 간 데를 모르는, 스케일 면에서 비교의 대상이 없을 것 같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리투아니아 샤울레이로 이동하는 국경지대는 온통 노란색 일색이다.






 ▼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리투아니아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대표하는 순례지로

샤울레이(Siaulial) 도심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795년 제2차 폴란드 분활을 계기로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31년에 일어난 11월 봉기, 1863년에 일어난 1월 봉기는 모두 폴란드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으킨 봉기였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들 봉기는 십자가 언덕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1918년 리투아니아가 독립한 이후에는 리투아니아의 독립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위한 기도 장소가 되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44년부터 1990년까지 리투아니아인들은 이 언덕에 십자가를 봉헌하면서 비폭력적인 저항을 나타냈다. 소련 당국은 3차례에 걸쳐 십자가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위키백과 인용]










 사진 속에 저 만치 보이는 건물은 성당 건물이다.

1993년 9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십자가 언덕을 방문, 미사를 올리며 성당 건립을 제안해 세워졌다고 한다.







 십자가 언덕 주위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유채꽃밭




 ▼ 늦은 점심식사를 했던 리투아니아의 어느 유서깊은 도시








 ▼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로이동 중이다.

라트비아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을 기점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휴개소에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 도착

빌뉴스는 2009년 지정된 유럽문화수도로, 14~15세기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한국식당으로 직행, 저녁식사로 된장찌개를 먹었다.

여행사가 생색내듯 제공해준 한식인 데, 가격을 너무 후려쳤구나 싶었다,

음식 체질이 세계화가 된 듯, 패키지 해외여행 시 제공되는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일 2019.05.12.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낮으막한 언덕을 숲처럼 덮고 있는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소망을 담은 수많은 십자가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뒹굴듯 어지럽게 놓여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종교는 라투아니아인들의 아픈 역사 속에 의 희망이었을 것이고 그 충성심을 나타내고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십자가 언덕을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역사적 이해 당사국은 침략의 수단으로 십자가 언덕을 공격했을 것이고... 과연 우리 주 하느님께서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무려면, 복잡성을 지닌 중세 발트국들을 보는 여행이니 만치, 지금의 그대로를 보고 이해하면 그만인 것을... 짧은 종교 역사 의식이 신앙인의 마음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는 지, 자책을 해보게 하는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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