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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니콜라이 1세 기마상과 성페테스부르크 시청 [러시아 성페테스부르크]

by 오향란 201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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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삭 성당을 바라보고 세워져 있는 니콜라이 1세 기마상.  

 

 

▼ 성페테스부르크 시청사

사진의 건물은 니콜라이 1세가 딸에게 결혼 선물로 지어준 궁전인데 아버지인 니콜라스 1세의 동상이 등을 돌리고 있어 보기 싫다고 이사를 했다고 하며 현재 성페테스부르크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여행일 2010.10.05.)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자신의 소생이 없어 자신보다 19살 어린 동생 '니콜라이'에게 왕위를 승계할 것을 비밀리에 약속을 한다. 그러나 비밀이 새어나가 1825년 12월 14일 정오에 급진주의 장교들, 이른바 '데카브리스트' 700여 명이 의회 광장에 도열해 새로운 형태의 통치체제 헌법 제정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니콜라이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대가 반란군을 둘러싸고 절대왕정이냐, 새헌법이냐,로 러시아의 운명을 흔드는 시간 '니콜라이 1세'는 황제로 즉위하고 대포로서 반란을 진압하다. 니콜라이 1세는 반란을 진압시키기는 했지만 자신의 앞날이 혁명 위협에 시달릴 것을 걱정해 반란에 연루된 장교와 사병을 시베리아로 유배시키고 핵심간부들은 교수형에 처한다. 니코라이 1세 치하에서는 그의 말 하나가 공식 칙령으로 자신의 정치적 사상을 토론하거나 발표하면 불법이고 법죄자로 체포되었다.

 

이시기에 서유럽에서는 민중의 반란으로 파리~프라하까지 전제정치가 모두 사라지고 폴란드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는 민중의 혁명으로 황제의 권위가 무너지자 니콜라이 1세는 유럽의 군주제를 수호하는 경찰을 자처하며 군대를 투입해 폴란드의 반란(1830~1831)을, 헝가리의 혁명(1848~1849)을 진압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제'를 복위시킨 후 오스트리아와 동맹하여 중유럽, 동유럽에 반혁명군을 파견하여 러시아의 세력을 중앙아시아 등지로 확장하고 여세를 몰아 1853년 오스만 제국 터키를 친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경계하며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전쟁에 투입하여 터키를 도와준다. 이것이 바로 '크림전쟁'으로 니콜라이 1세는 세계 최강의 군대로 인정받고 있던 자신의 군대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대 충격에 빠지며 자신을 칭송하던 군주들이 등을 돌린 가운데 1855년 2월  차가운 빗속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이튿날 펴렴에 걸려 1주일 후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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