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보부상의 육로의 중심지로 양곡을 비롯한 물자의 수송과, 문화, 양곡, 양조산업, 장터가 형성되어 한국 산업화 시기의 번성기를 맞이하였고,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퇴의 과정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지역 역사 흐름의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구) 판교역
지금 판교특화음식촌으로 변모한 구 판교역은 일제 강점기, 1931년 11월 1일 장항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해방 후 판교역은 6.25전쟁의 아품을 겪었으며, 학생들의 통학 열차의 역활과 희망과 꿈을 안고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11월 27일에 장항선 직선화로 마을에서 떨어진 판교면 지산리로 이전했다. 지금의 판교역은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구 판교역 광장에 있는 이 소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옛) 공관 · 판교극장
1661년 공관으로 세워진 문화공간으로, 당시 서천 판교의 경제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영화상영은 물론 유명가수들의 쇼 공연과 콩쿠르가 열릴 때면 인근의 부여, 옥산, 시초, 문산, 홍산 등지에서 찾았을 만큼 판교의 상징이었다.
월남전 이후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극장도 하향길로 들어섰다. 이후 체육관으로 잠시 사용되기도 했다.
구) 판교농협
신) 판교농협
옛) 우시장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장항선 판교역이 개통되면서 판교 현암리는 활성화를 이뤘고, 1980년대 중반까지 충남의 3대 우시장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했다. 우시장의 규모가 대단해서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우시장에는 소를 운반할 교통수단이 없어 몇 사람씩 짝을 지어 소를 끌어다 주는 소몰이꾼 직업이 있었다.
우시장을 빙 두른 담벽락에 소시장 풍경이 그려져 있다.
주차한 차량들이 담벼락을 가리고 있어 정성들인 벽화를 온전히 감상할 수 없는게 아쉬웠다.
옛 우시장 근방 식당 마당에 연탄재가 수북이 쌓여있다.
판교가 잘 나가던 당시 우시장 주변에는 수많은 주막을 겸한 국밥집이 있었다고 한다.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주요 건물들에 스템프 찍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일본식 가옥 & 장미사진관
판교 현암리 유일한 2층 목조건축물로 2층에는 1932년이라는 상량문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판교면을 통치한 일본 부호들이 사용했던 건물로, 일본말을 못하면 쌀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당시의 아픔이 서려있는 건물이다. 해방 이후 우시장과 세모시시장 상인들을 위한 여관으로 사용되다가 장미사진관으로 사용되었다.
구) 촌닭집
곧 쓰러질것 같은 이 건물은 판교에 역이 생기면서 관공서와 상가들이 들어설 당시 행정문서를 작성해주던 대서방 등으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주인이 바뀌어 촌닭집으로 사용되었다.
일자형 목조건물로 전면부는 상점, 후면부는 아궁이가 있는 구조이다. 전면부는 여러 점포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현암갤러리
촌닭집 바로 옆에 있는 현암갤러리는 옛 판교 현암리의 역사를 알리는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현암갤러리 뒤쪽에는 판교 마을의 행정동인 현암리의 유래가 된 현암(검은바위)이 자리하고 있고, 그 현암의 일부를 볼 수 있도록 갤러리 내부 뒷벽의 일부를 유리창으로로 설치했다.
현암갤러리 유리창에서 본 현암(검은바위)
동일주조장 TEL : 45
2000년도까지 박씨 일가가 삼대째 운영하던 곳이다.
동동주, 탁주, 농주, 왕대포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던 막걸리를 공급하던 판교의 중요한 곳이었다. 쌀이 귀했던 시절, 가정에서 밀주를 담그다 적발되던 그 시절에는 밀가루로 막걸리를 제조해 판매하였으며, 그 후 통일벼의 보급으로 쌀 자급자족이 이뤄지자 쌀막걸리가 보편화 되었고, 막걸리의 재료인 쌀의 원활한 수급을 위하여 쌀방앗간을 같이 운영하였다 (동일주조장 바로 옆에 동일정미소)가 있다.
오방앗간(옛 삼화정미소)
판교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으로 삼대째 운영했던 삼화정미소의 목재간판은 1950년~1560년 사이에 설치한 것으로 삼형제가 의좋게 운영하라는 아버지의 소망인 삼화(三和)를 담고 있다. 당시 삼화정미소는 다른 정미소와 달리 수입전동기를 사용했는데 명절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하며, 오씨 일가가 운영했기 때문에 오방앗간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정미소 내부에 원형 그대로 작동 가능한 설비가 잘 보존되고 있다.
서천 판교교회
양떼를 모는 온화한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대형 벽화가 인상적이다.
애국지사 故 고석주 선생이 세운 교회라고 한다.
애국지사 故 고석주 선생 흉상
고석주 선생은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해 독립단체 활동과 언론인으로 활약하다가 귀국 후 1919년 군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으로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천 판교면에 정착, 복음을 전파하고 농촌계몽운동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다가 1937년 별세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여행일 2021.12.23.
서천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충청남도에 따르면 서천군 문화재청과 함께 오래전 건물들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서천군 판교 현암리를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대표적인 근대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역사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화재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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