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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궁지 - 강화유수부 동헌, 외규장각

by 오향란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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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궁지(江華 高麗宮址 : 사적 제133호)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1270년(원종 11) 몽골과 화의를 맺고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 고려의 왕궁터였다. 

강화 고려궁지 승평문(昇平門)
고려궁지 안에서 본 승평문(昇平門)

 

 

강화유수부 동헌(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로, 1977년 복원 수리하였다. 

 

 

강화유수부 동헌 뜰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로

조선 인조 9년(1631)에 여러 전각과 행궁을 세울 때 심었던 나무로 추축된다. 

 

 

외규장각(外奎章閣) 

1972년 2월 조선 정조 때 왕실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활을 하였다. 

어람용 의퀘는 왕이 열람하는 의퀘로 표지를 화려하게 비단으로 제작하였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를 사용하였으며,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 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하였다. 

 

분상용 의퀘는 관련부서와 지방의 각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는 의퀘로 저주지가 사용되었으며 검은 선을 두르고 표지는 삼베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강화유수부 동헌, 외규장각 뒷모습

 

 

 강화 고려궁지 연혁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고려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대몽항쟁기 39년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몽골군의 화친 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1270년)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행궁, 유수부 건물과 함께 민가까지 들어서면서 고려시대 궁궐의 모습이 사라졌다. 현재의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궐의 영역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래는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대규모 공간이었다. 

 

여행일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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