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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이야기가 있는 파주 화석정(花石亭), 임진강을 바라보다

by 라니더월드 2018.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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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화석정(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은 이이의 부친의 고향으로 율곡이란 호도 율곡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이이는 나이가 들어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여가가 날 때면 화석정을 찾아와 돌보았으며, 관직을 물러난 뒤에는 화석정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당시 이이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使) 황홍헌이 화석정을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화석정()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

 

 

 

건물의 정면에 걸려있는 화석정(亭) 현판은 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이다.

 

 

 

율곡 이이가 8세 때 화석정에 올라 지었다는 팔세부시()가 화성정 내부에 걸려있다.

 

 

 

八歲賦詩 (팔세부시)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색홍하처거 성단모운중)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처량한 울음소리 저녁구름 속에 그치네

 

 

 

 

화석정에서 보는 임진강과 장단평야, 장단은 장단콩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임진강 건너로 보이는 장단평야는 휴전선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의 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민통선 구역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군 작전과 보안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경작권 허가를 가민간인에 한해서입을 허락하고 있으며, 토지 소유권의 행사 등 일부 개인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이 통제되고 있다.

 

 

 

 

 

 

 

선조가 임진왜란을 맞아 의주로 피난 가던 중 임진나루 근처에 왔을 때, 날이 궂고 칠흙 같이 어두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는 데, 화석정에 불 질러 길을 밝힌 뒤 강을 건넜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일설에 따르면 선조는 왜구의 침공을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이는 선조의 피난길을 대비정자에 기름칠을 해두었던 것이다.

 

여행일 2018.06.23.

 

 

화석정 터는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길재의 소유였다고 전해지나 확실치으며, 세종25년(1443)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 이명신이 세운 정자를, 종9년(1478) 이이 증조부 이의석이 보수하고, 몽암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80여 년간 빈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14년(1673)에 이이의 증손인 이후지, 이후방이 복원하였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1966년 파주 지역 유림들이 정자를 복원하였고, 1973년 정부에서 실시한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화석정에 단청이 입혀지고 주위도 정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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