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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부산&대구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을 찾아서 (경북 영주 소수서원)

by 오향란 201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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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을 경계한 죽령(竹嶺) 고갯마루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을 찾아서

시원스레 뻗어 올라간 울창한 송림으로 덮힌 길이 숙주사지 당간지주가 서 있고 수령이 5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소수서원 정문으로 인도한다.

 

▼ 숙주사지 당간지주

 

▼ 수령이 50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 소수서원 정문 앞 '죽계천'이 보이는 곳에서

 

▼ 경렴정(景濂亭)을 뒤로 두고

 

▼ 소수서원 정문 옆에 자리한 경렴정(景濂亭)과 은행나무 · 이 은행나무도 500년 되었다고...

 

▼ 소수서원 앞으로 흐르는 죽계천 건너편에 취한대(翠寒臺)가 보인다.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제55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1542년(중종 37) 당시 풍기군수이던 주세봉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묘를 세우고 백운동서원()이라 불렀는데 이후 1550년(명종 5) 풍기군수로 부임해 온 퇴계 이황이 조정에 청해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 성리대전 등의 내사를 받아 내어 우리나라 최초의 공인된 사학이자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 강학당(講學堂)

선비들이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으며 건물 안쪽에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

공부를 가르치는 스승들의 숙소로 직방재는 원장이 일신재는 일반 선생들이 사용 했다고 한다.

 

▼ 문성공묘(廟)와 장서각((藏書閣)

장서각은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관 같은 곳으로 임금이 직접 지어 하사한 어제 내사본을 비롯 3천여권의 장서를 보관했던 곳이며

성공묘에는 서고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의 영정(국보 111)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殿圖 . 보물 485)가 안치되어 있다.

 

태극문양의 문을 달고 있는 곳이 문성공묘이고, 정료대와 관세대를 앞에 두고 있는 작은 건물이 장서각이다.

 

▼ 정료대와 관세대

정료대는 석재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과 서원을 밝히던 조명시설이며,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 씻는 대야를 올려놓던 받침돌을 일컸는다.

 

▼ 영정각(影幀閣)

영정각에는 중국과 한국의 이름 높은 유학자인 주자와 노자, 퇴계, 안향, 주세봉, 이덕형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 일영대(日影臺)

상부석재 위에 막대기를 꽃아 그림자가 하부석재에 표시된 12간지에 드리워짐을 보고 시간을 재던 해시계이다.  

 

▼ 학구제(學求齎)

소수서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이 머물던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곳이다.

 

▼ 지락재(至樂齋)

학구제와 같은 곳으로 소수서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이 머물던 곳이다.

 

▼ 학구제 뒤로 난 문

 

▼ 사료관(史料館)

학구제 뒤로 난 문으로 들어가면 사료관이 나오는데 학생들이 수학하는 모습과 고려의 유학자 안향에게 제사를 올리던 모습이 미니어처로 제작되어 있다.

 

▼ 사료관 뒤에 있는 이 문을 들어서면 충효교육관이 나온다.

 

소수서원 정문 옆 성생단을 시작으로 소수서원을 관람하고 뒷문격인 충효교육관에 들러 죽계천 쪽으로 난 문을 나와 연못 아래 죽계천 징검다리를 건너면 숲속에 자리한 소수박물관과 선비촌으로 이어기는 길이 나온다.

소수서원 입장권으로 소수박물관, 선비촌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데 그 값어치가 충분한 곳이다.

여행일 20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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