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령(八達嶺) 장성
만리장성(萬里長城) 중 가장 대표적인 팔달령 장성은 사방팔방 경관이 좋으며 굴
곡이 심한 능선이 마치 용이 춤을 추는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있는 곳으로 북경 연경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팔달령 장성 관광은 케이블카를 이용하였다. 이 곳의 케이블카는 놀이공원에서
천천이 한바퀴 도는 우리나라 놀이기구 같이 생겼는데 마주보는 것이 아니고 등을 대고 밖을 편하게 볼 수있게 자세만 바꾸어져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돈대가 설치되어 있고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는 출입문이 설치되었으며 수비병이 주둔했다.
이러한 장소를 관(關) 또는 구(口)라고 한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라와 그렇게 많이 걷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중간 쯤 올랐는데 숨이 차다. 혹독한 추위가 더 숨을 차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팔달령(八達嶺) 정상이다.
이 곳에 오르니 만리장성을 그래도 한눈에 볼수있다. 어마 어마하게 추운 날씨로 사진에 인상이 모두 얼어있다.
중국의 대표적 유적지로 역사에 숱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중국의 인공건축물 만리장성 팔달령 정상에 서서 험준한 산에 여러갈레로 뻗은 성벽 줄기를 보면서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성벽을 쌓은 군왕의 심오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도 같고 중노동을 해야만 했을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도 그려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만리장성 관광이다. 이 큰 대륙에 어디까지 언제까지 방어 성벽을 쌓으려고 했던건지.. 인간의 무모한 이기심을 읽는다. 음력 정해년(丁亥年)년의 마지막 날 호된 추위를 뚫고 만리장성 팔달령 정상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여행일 2008.02.06
* 만리장성(萬里長城) -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 *
만리장성을 정리하려면 끝도 없고 알기도 힘들어 나름대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만리장성은 발해만에서 멀리 고비 사막까지 산머리를 따라 수천km로 이어지는 긴 성벽으로 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장성은 북방에만 한정되지 않았고 중원에 나라를 세운 제(齊) 중산(中山) 초(楚) 연(燕) 조(趙) 위(魏) 진(秦) 등의 여러 나라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구축했다. 그 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始皇帝)가 연(燕) 조(趙)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든 북변의 장성을 서쪽으로 더 연장하여 연결시켰다.
한(漢) 당(唐)은 성벽을 그다지 중시되지 않아 소국(小國)이 분립(分立)한 남북조 시대에 북조의 몇 나라만이 국경 부근에 장성을 만든 것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판토(板土)로 만든 벽돌을 많이 사용해 성을 만들어 조잡한데다 청대에는 외적의 세력이 쇠퇴하여 중국과 싸울 힘을 잃었기 때문에 성의 보수는 행해지지 않았서 옛 성은 유적지 조차 알 수 없는 곳이 많으며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져 성벽 이라기보다는 흙벽에 가까운 곳도 많다.
현재의 일반인들에게 보여지는 만리장성은 명대(明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明은 몽고의 재침을 두려워해서 성을 강화하면서 주로 북제시대의 유적을 기초로 했으나 몽골족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가정연간(嘉靖年間) 이후 대대적으로 개축을 시작했다. 한대에 축성된 이래 거의 버려진 채로 있었던 서쪽 부분과 오르도스 남단의 장성에 이어 간쑤에 이르는 부분이 축성되었고, 이어 란주[蘭州]에서 자위관까지 연장되어 지역에 따라서는 상당 부분 신설한 것도 있다. 이 공사는 동부에서 착수되어 오늘날 남아있는 장성이 완성된 것은 16세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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