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한이 서려 있는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제 50호)
모터가 달린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데, 채 5분도 안 걸렸다.
단종어소
어소 담장 내에는 단종이 머물던 본체와 남녀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 및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이 있다.
단종이 머물던 어가 본채
남녀 관노들이 기거했던 행랑채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
본래의 어소 건물이 소실되어 영조 39년(1763) 어소가 있던 자리임을 표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은 소나무라 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한다.
금표비
상왕에서 강등된 노산군이 청령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른바 행동 반경을 제한하는 금지령 푯말이다.
망향탑
험준한 봉으로 이어진 충암절벽의 이 돌탑은 단종이 한양에 두고온
왕비 송씨(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아올린 것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고 한다.
정순왕후는 81세까지 살았다고 하며 무덤(사릉)은 남양주에 있다.
삼면이 강이고 일면이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는 마치 외딴섬과 같은 지형이다.
여행일 2017.04.29.
단종은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재위 1450~1452)의 외아들로 어린나이에 등극, 즉위 3년(재위 1452~1455)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찬탈당하고 상왕이 되었다. 1456년 단종의 복귀를 도모하였던 사육신이 처형되고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수양대군의 동생이며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경상도의 순흥에서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사사되고 노산군에서 강등이 되어 서인이 되었다. 두 달 뒤 여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나자 청령포를 나와 영월 관풍헌으로 거취를 옮겨 유배생활을 이어갔다. 같은해 10월 24일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관풍헌 마당에서 받아들이고 열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려는 이가 없었는 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극비리에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모셨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선조 때에 상석 표석 장명 등 망주석을 세웠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에서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었고 숙종 24년(1698)에 임금으로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예나 오늘날에나 그놈의 정권욕 때문에... 부디 안보가 든든한 나라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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