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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부산&대구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인흥세거지)

by 오향란 201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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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본리세거지(南平文氏 本里世居地)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는 1715년 문재철이 인흥사 절터를 구입하여 최초 거주하였으며

고려 말 원(몽골)나라로부터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18대손인 문경호가 1840년을 전후해 터를 닦고 누대에 걸쳐 살아가는 집성촌이다.

현재 조선 후기의 양반가옥 9채와 별당 양식의 정자 2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구시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

본래 인흥사에는 2기의 석탑이 있었다. 현재 1기는 경북대 앞들로 옮겨지고, 1기만이 옛 안흥사지를 지키고 있다.

1.5m의 삼층석탑은 옥석 받침이 마멸되어 원형의 형체를 잃었으며, 현재 탑재는 남평문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수봉정사(舍)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봉정사는 일명 수백당이라 하며, 손님 맞이 및 일족의 각가지 행사의 장이 되는 곳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겹치마 팔작지붕의 견고한 건물로 1936년에 지어졌다.

 

 

 

 

 

 

 

문중의 선대 어느 분이 죽음에 사치가 웬말이냐고 호통을 쳐서 무덤에 세우는 석물이 수백당 마루 밑으로 숨었단다. 

 

 

 

 

↓ 마당 한 쪽에 자리한 우물은 넓직한 돌로 된 덮개를 덮고 있다.

돌덮개는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위에 철판 뚜껑을 덮고 있어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인수문고(仁壽文庫)

광거당과 수백당에 소장되고 있던 만여 권의 전적과 고서화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1981년 정부 보조를 받아 수봉정사 옆 공터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인수문고라 하고, 두 곳의 서책들을 옮겨 수장하고 있다.

 

 

호가 수봉인 문영박대구 달성을 빛낸 7인의 인물 중에 한 분으로

국내 서적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을 중국으로부터 수집했고, 당대의 문인들을 초청하여 남평문씨 세거지를 전국에 이름 알렸다.

문영박파리에서 열리는 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가 발각된 파리장서 사건으로 투옥된 유림을 위해

거금을 내놓기도 했으며, 사후,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일동'이라는 조문을 받기도 했다.

 

 

 

1910년 나라가 망하던 무렵 남평문씨 문중은 자제들을 일제가 세운 교육기관에 보낼 수 없다고 판단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사립학교이자 도서관 역활을 한 만권당을 설립했다.

글월 문(文)자를 쓰는 남평문씨의 한자어가 대단히 합당한 것 같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를 지켜봤다는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이며, 선비나무 혹은 학자나무라 부른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건물들의 건축연대가 200년 미만의 조선 후기임을 감안할 때 가옥과 도로가 반듯하게 구획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돌과 흙을 이용해 담장을 높게 쌓은 것도 특징적이고, 해설사에 따르면 배산임수 지형으로 좋은 곳이기는 하나 바람이 심해서 담장이 높아진 것이라고.

 

 

 

순수 자연으로 꾸며진 멋스런 토탐 길이 발길을 맛나게 한다~

 

 

 

광거당(堂)

1873년 남평문씨 문중의 후은공과 문성공이 중국 서적 수천권을 수집하여 자제들을 위한 학문과 교양의 장으로 세웠다.

 

 

광거당 대문을 열면 헛담을 장식한 꽃 한송이가 질박한 아름다움을 준다. 대문 안 헛담은 밖과 안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세운 것이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전경

얕으막한 마을 둘레에서 바라다본 전경이라 넓게 펼쳐 잡지를 못했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장자(맏아들)만 대를 이어 사는 형태여서 씨족 마을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인흥사 절터에 만들어져 '남평문씨 인흥세거지'로 불리다가

거주지 동네 이름 '본리'를 따서 지금의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라 이름 하였다.

 

 

 

어린 날 외가에 다니던 그 때가 그립다.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가 그립다.

세 살 위인 막내모에게 막무가내였던 그 때가 눈 앞에서 아물아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이 그립다, 그 때가 그립다.

 

외가가 남평문씨이고 보니 관심의 시선을 더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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