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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라틴다리 (사라예보 사건)

by 오향란 201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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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예보 사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군사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에 남슬라브민족 통일을 부르짖던 '젊은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4명의 학생들이 음모를 해 일차적으로 황태자 부부가 탄 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황태자는 폭탄을 주워 테러범에게 도로 던지는 용기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 황태자 부부는 이날밤 이 일로 부상당한 관리를 찾아 문병을 가던 중 운전기사가 길을 헤메였고 이 뜸을 타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이며 대학생이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황태자 부부가 탄 차 앞으로 뛰어 들어 총으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고 그의 부인 '조피'를 암살했다. 가부릴로 프린치프는 황태자의 부인 조피를 암살할 목적은 없었으며 보스니아 군사령관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장군을 겨냥했었다고 한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형은 면했으나 1918년 봄 폐결핵으로 감옥에서 사망했다.

[남슬라브 운동: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세르비아와 합쳐지기 바람]

 

이 사건 이후 1914년 7월 23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가 관련되었다고 하여 최후통첩을 보냈고

협상이 결렬되어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째 되는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각 이해 당사국들이 참여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된 '라틴다리'

 

 

▼ 사라예보 박물관 (MUSEUM)

사라예보 당시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저격 직전 몸을 숨기고 있던 카페가 있던 자리에 사라예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사라예보 박물관이 세워졌다. 정부에서 이 자리에 있던 카페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 주었는데 카페 이름이 '용기있는 자의 집'이라고 한다. 정부가 카페를 수용하면서 높은 보상가를 제시했는데 거절했다고 해서 시민들이 붙혀준 이름이란다.

 

 

 

▼ 사라예보 박물관 외벽의 라티다리의 사건을 기록해 놓았다.

 

 여행일 2011.10.19.

 

세르비아는 1389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래 러시아, 오스만 투르크,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다. 1878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세르비아는 독립을 이루었지만 1908년 오스트리아에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 당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오랜 외세의 지배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족독립의 의지를 불태웠으며 사라예보 사건은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일어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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