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역사 문화 도시 타르투(Tartu)
에스토니아 제2에 도시 타르투(Tartu)
인구 10만 명 정도이며, 대법원과 교육부, 국립박물관 등이 소재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역사 문화의 중심지다.
타르투 시청광장
광장 바닥의 돌 틈 사이로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 데, 밤이 되면 아름다운 야경을 만든다고 한다.
중세 축제인 한자 페스티벌이 이 광장을 중심으로 펼처지는 데, 유명하다고 한다.
광장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번화가인 퀴니 거리와 뤼틀리 거리가 시작된다.
트르투 시청사
1789년 독일인의 설계에 의해 지어졌다. 1층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키스하는 학생의 분수대
1948년 분수대가 먼저 만들어지고, 1998년 조각가 카르민(Mati Karmin)이 조각상을 세웠다.
매년 이 동상과 가장 비슷하게 키스하는 연인을 선발하는 콘테스트가 열린다고 한다.
타르투 대학교 본관 뒤쪽에 있는 강의동
타르투 대학교(Tartu Ülikool) 스웨덴 지배 시기인 1632년, 30년 전쟁 당시 폴란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있끈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Gustav Adolf)가 설립했다. 발트 3국을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 기관으로, 러시아 제국 치하에서는 유리예프 대학교로 불리며 러시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타르투 대학교 맨 꼭대기에는 중세시절 학생들을 처벌하는 대학 감옥이 있다고 한다.
대학 감옥은 상당 부분이 훼손되긴 했지만, 당시 처벌되었던 학생들의 낙서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영광, 부담... 그들의 사명감이 남다를 것 같다.
강의동의 하나인 이 건물 면에는 현재 타르투 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스토니아 대표 지성인들의 얼굴이 장식되어 있다.
1909년 노벨 화학상을 받는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 천문학의 대가 슈트루베(Struve), 기호학의 아버지 유리 로트만(Yuri Lotman), 발생학의 아버지 카를 베어((Karl Ernst von Baer) 등 세계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
철학동 벽면에는 옛 타르투 대학교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토메매기(Toomemägi) 언덕
토메매기 언덕 곳곳에 타르투 대학교와 관련된 여러 위인들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크리스티안 자크 피터슨(Kristjan Jaak Peterson 1801-1822)
그는 재정 러시아에 의해 농노 제도가 철퇴되면서 농노로서 처음으로 타르투 대학교 학생이 되었다.
그는 라트비아인인 어머니를 따라 리가에 살았는 데, 타르투 대학교까지 그 먼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에스토니아의 첫 번째 시인이 되었으나 21세 이른 나이에 결액으로 사망했다.
그의 동상이 들고 있는 지팡이는 그가 통학할 때 쓰던 실제 지팡이라고 한다.
리가에서 타르투까지 그것도 왕복했을 텐데, 이해는 안되고 감탄사만 나왔다.
타르투 대성당(Tartu Cathedral)
한때 발트3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13세기 건물로, 여러 번에 걸친 전쟁의 결과로 끝내 폐허의 잔재로 남아있다.
타르투 대학교 역사박물관
파괴된 타르루 대성당의 한 쪽 면이 복원되어 타르투 대학교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악마의 다리(kuradisild)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300주년 기념하기 위해 1913년에 건설되었다.
천사의 다리(Inglisild)
1802년 타르투 대학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총장을 지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파로트를 기념하기 위해 1838년에 만들어진 다리이다.
주변의 풍경이 영국과 같다고 영국 다리라고 이름 했는 데, 에스토니아어로 영국과 천사 발음이 흡사해 천사의 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발가벗은 아빠와 아들
이 발가벗은 동상은 작가 윌로 으운(Ülo Õun)이 자신과 그의 한 살 먹은 아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역발상 표현도 있구나... "인생 뭐 있어, 그게 그거, 거기가 거기"로 해석 해봄.
타르투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타르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데, 2인용 아파트라고 한다.
타르투에 안녕을 고하고 에스토니아의 국경 도시 나르바로 향하고 있다.
여행일 2019.15.15.
에스토니아 타르투(Tartu)
1030년 경부터 기록이 된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다. 발트3국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셈이다. 키예프 루스, 노브고로드 공국, 루스차르국, 폴라드 리투아니아 연합, 스웨덴 제국, 러시아 제국 등 동북 유럽의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는 데, 특히 17세기에는 폴란드(22년)와 스웨덴(73년), 러시아(5년) 간의 각축장이었다. 독일, 스웨덴, 폴란드는 여기를 도르팟(Dorpat)이라고 불렀으며, 러시아는 유리예프(Юрьев)라고 불렀다. 에스토니아 독립 후 타르투가 공식 명칭이 되었으며, 소련 시절 타르투 공군기지 때문에 외국인 출입이 동제된 비밀의 도시로 있었다. [나무위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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