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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칠레 제1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Valparaiso)

by 라니더월드 201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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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역사지구 발파라이소(Valparaiso)

 

스페인 정복자 후안 데 사베드라에 의해 명명된 발파라이소는 천국의 계단을 뜻한다고 한다.

 

 

 

▼ 발파라이소 중심 광장 소토마요르(Sotomayor)

 

 

 

소토마요르 광장에서 제일 번듯한 해군 총사령부  

 

 

소토마요르 광장 중앙에 있는 이 동상은 태평양 전쟁 해군 영웅들을 기리는 이끼도 영웅 기념탑이다.  

 

 

 

 

 

▼ 19세기 후반 가장 번성했던 프라트 부두(Muelle Prat)

 

 

 

 

 

프라트 부두는 어선을 비롯한 여객선, 컨테이너 운반선, 군함까지 모든 배들이 드나들며 여행객을 위한 배들도 있다.

 

 

 

 

▼ 해안로를 따라 발파라이소 주에 속해 있는 칠레 최고의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로 향하고 있다.

 

 

 

 

메트로 발파라이소

발파라이소는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로 이어지는 안데스 횡단 철도 서쪽 기착지로서 철도 교통이 칠레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다.

발파라이소를 중심으로 수도 산티아고를 포함한 주요 도시를 운행하는 철도와, 산티아고와 비냐 델 마르를 운행하는 철도 메트로발파라이소가 있다.

 

 

 

 

2014.12.11.

 

19세기 후반 가장 번성했던 칠레 제1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의 역사를 간락하게 정리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다음 가는 도시이며 산티아고에서 1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536년 스페인의 후안 데 사베드라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다. 1544년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정착지로 정하고 최초의 항구가 되었다. 해일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잦은 전쟁을 치렀으며, 181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첼레 해군이 창설되면서 소토마요르 광장 주변에 행정기관과 은행, 해군사관학교, 쇼핑센터 등이 들어섰다. 1840년대 캘리포니아 골드러쉬 시대에 칠레산 밀의 수요 급증으로 매우 번성하였다. 이후 1914년 파나마 운하가 생긴 이후 발파라이소의 산업은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발파라이소의 현재 모습은 대부분 1906년과 1971년의 대지진 이후 재건된 모습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축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항만과 가까운 언덕에는 고급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고, 가파른 언덕 높이 올라갈 수록 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허름한 판자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판자집들을 형성하고 있는 언덕과 벽에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다양한 벽화들이 치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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