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왓(Angkor Wat)
수르야 바르만 2세(1113~1150년)가 사후 자신이 묻힐 영생의 장으로 힌두교의 비쉬누 신에게 봉헌한 사원으로
즉위한 해부터 시작하여 사망한 해 까지 무려 37년간이나 다듬은 사원이다.
앙코르 왓 사원 입장하기전 가이드가 이곳의 역사를 성실히 설명을 한다. 더운데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으니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한다. 설명을 온전히 알아 듣지도 못하겠고 모두들 더위에 지친 표정이다.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관람하면서 설명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이드가 두말없이 즉시 응해주어 고맙기는 했는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공부한 앙코르 왓에 대해서 소설적으로 엮어서 이야기 하는 중간에 깨어 버렸으니...
200m 폭의 해자를 가로 지르는 다리(폭 12m, 길이 230m)를 따라 들어가면 다시 300m의 보도가 신전까지 이어진다.
1층 겔러리에는 높이 2m, 길이 804m(서쪽 187, 남쪽 215, 동쪽 187, 북쪽 215)의 벽면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부조들로 채워져 있다.
앙코르 왓의 내부는 기본적으로 십자형 모양으로,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으로 되었 있다. 정문으로 통하는 서쪽 현관 건물 폭은 235m나 된다. 담 둘레는 5.6km 이고, 지상에서 부터 총 65m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크게 3층으로 구분 한다. 각 층 외부에 회랑이 둘러져 있고, 중앙과 모서리 부분에는 상부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은 미물계를 나타내고, 2층은 인간계, 3층 중앙탑이 천상계를 상징한다. 중앙과 각 코너에 하나씩 모두 5개의 탑의 외관은, 전체적으로 연꽃 봉우리를 형상화 하고 있으며, 중앙의 탑은 다른 탑보다 높다. 이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불교의 수미산)을 상징하며, 주변의 네탑과 함께 메루산에 있는 다섯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의 외벽은 세상 뜰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며, 성벽을 감싸고 있는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복구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한다.
인간이 위대한 것인지 자연이 위대한 것인지... 우주를 넘나드는 21세기에 살면서도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불가사이 하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앙코르 왓, 그 흔적들을 더듬으면서 은근히 화가 난다. 절대 권력의 탐욕, 왕조 사원 건설에 희생양이 되었던 크메르인들, 그들은 오직 그곳에서 해방되기만을 꿈 꾸며 수만갈래의 찢어지는 고통과 싸우다 죽어 갔을 것이다. 그것도 600년 이라는 긴 세월을 대물림 하면서 말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인내하며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밤이면 대충 기록을 하기도 하며 보낸 캄보디아 여행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유적지에 반해서도 아니고 너무 뜨거워서도 아니다. 신발도 안신고 풀꽃반지를 내밀던 아이의 커다란 그 눈망울이 내 눈에 이슬을 만들며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맑은 순수는 그 누구가 가르쳐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꾸밈이 없는 그들에게 지금은 내일을 위해 있는 거라고 표현으로라도 전해 줄 걸 그랬다.
마음이 모질지도 못한 나인데 손을 내밀고 따라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상하리만큼 냉정했다. 내가 손을 잡아 줄 정도는 되는데... 가이드에 말에 의해 그들이 잘 못될까봐서도 아니다. 내마음 안에 무거움을 채우고 있어서일 것이다. 앞으로는 세상 속 어디를 가든 표정으로 전해지는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준비하는 삶이여야 하겠다. 나는 가야 할 세상이 많기 때문이다... 정말정말 무더운 날씨에 차츰 무너지는 체력을 감내하며 얻은 것이 있다면 욕심을 버리면 그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여행일 2008.07.18
세계 7대 불가사이 앙코르...
앙코르 왕국의 전성기는 서기 790년에서 1432년 까지이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이 앙코르 왕국의 영토였다. 수도인 앙코르(지금의 씨엠립)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그시대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그렇게 번성했던 앙코르 왕국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이들이 왜 앙코르 왓을 버리고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9세기 부터 15세기까지 화려함을 자랑하며 600년간 동남아시아를 호령했던 크메르 제국은 하루 아침에 홀연히 사라져 밀림 속에 400년간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왕국 앙코르 왓이 발견된 것은 400년이 훌쩍 지난 1850년이었다. 선교 여행에 나선 프랑스의 신부가 밀림을 헤메다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사원과 끝없이 늘어선 탑과 불상들을 발견했다. 허겁지겁 돌아온 신부는 밀림의 도시라는 책을 썼고, 이책을 읽은 탐험가 앙리 무어가 1860년 앙코르 왓을 방문하여 3주를 보내던중 앙코르 왓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솔로몬왕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와 같이 뛰어난 조각, 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세운 것 보다도 더 장엄한 것이 캄보디아 밀림에 묻혀있다고 감탄했던 것이다. 그 매혹적인 말에 서양인들은 음습한 정글로 모여 들어 도굴을 해가기 시작했다.
1920년대 극동 아시아에 머물며 고고학 탐험과 혁명운동에 참여하던 20대 초반의 앙드레 말로가 캄보디아에서 도국범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구형 받았다가 프랑스 국내의 구명운동 덕분에 간신히 석방된다. 그런 그가 드골 정권아래 문화상을 역임할 때 앙코르 유적을 복원하고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데 큰 역활을 했다. 밀림에 묻혀있던 이 도시를 프랑스 극동학회의 관할 하에 숲을 제거하고 제단을 수리하고 배수로를 설치하여 붕괴를 막는 작업을 하였다. 이후 캄보디아 내전으로 중단 되었다가 이런 작업들은 1993년 재개 되었고, 프랑스와 일본 유네스코가 합작을 하여 국제 위원회를 만들어 보존에 힘쓰고 있다.
기록일 20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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